엄마는 내게 반지를 주셨다.
그 반지는 내게 힘이 되어 주고 있다.
힘든 일이 있을 때 엄마가 준 반지를 만지작거리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저절로 힘이 난다.
엄마가 보고 싶다.
엄마는 금쪽같은 큰아들을 당신보다 먼저 하나님 곁으로 보내야 했다. 큰오빠는 너무나도 아파하실 엄마의 건강을 위해 작은 은가락지 두 개를 엄마의 손가락에 끼워줬다. 이 은가락지는 우리 엄마의 보물이고, 기쁨이고, 슬픔이고, 아픔이다.
우리 엄마는 당신께서 하나님 곁으로 가실 때 이 은가락지를 꼭 끼고 가셨다. 그러면 하늘에서 큰오빠를 만날 수 있다고 하시며 거짓말처럼 은가락지와 함께 주무시듯 하나님 곁으로 가셨다.
이 반지는 엄마의 초상이다.
엄마가 그립다.
엄마의 가재 손수건에서 나온 이 반지는 흠집도 많고 틈도 생겨 보석도 금방 떨어져 버릴 것 같았다. 엄마가 가장 오래 끼셨고 추억이 많은 반지라며 혹여나 잃어버리실까, 꽁꽁 싸매어 두셨었다.
큰딸이 해준 거라며 여기저기 오랫동안 자랑하고 다녔을 엄마의 모습이 그려진다. 지금은 엄마의 손수건 그대로 큰언니가 보관 중이다. 큰언니는 수선하지 않고 그대로 가지고 있을 거란다.
우리가 결혼하여 앞만 보고 달려온 제1막 35년이 지나갔네요.
100세까지 살려면 제2막 35년이 기다리고 있어요.
우리 죽는 날까지 서로 사랑하고 건강하게 살아요.
-신랑 정수영-
결혼해서 지금까지 살아온 것 감사해요.
앞으로도 나만 죽도록 사랑해줘요.~~
-신부 심정희-
한복집에 들어가자마자 눈에 띄었다던 이 반지는 어떤 한복에도 잘 어울려 그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하는 마법 같은 반지라고 한다.
화려하지도 않게 다소곳한 자태는 많은 세월이 흘렀어도 그 가치가 여전한 것 같다.
살아가다 보면 우연히 내 것이 되는 것들이 있다. 이 반지도 어느 노점상에서 스치듯 한 번 보고 지나갔지만 결국, 걷는 내내 눈에 밟혀 결국 되돌아가 내 것이 된 반지다.
그 뒤로 몇 번은 나와 함께 외출을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인가 서랍 속을 차지하는 신세가 되었다.
이 반지가 앞으로도 언제 다시 외출을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예비신부와 예비신랑은 결혼식에 사용할 예물을 연예 때부터 사용한 커플링으로 대신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양가 어른들의 성화에 어쩔 수 없이 이 예물 반지를 주고받게 되었다.
결혼식 이후 이 반지가 세상에 나온 건 내 카메라 덕분이었다.
아이의 엄마는 아이가 준뜻밖의 선물에 가슴 벅찬 행복감을 느끼며 아이를 꼭 껴안아주었다고 했다. 그녀에게 이 반지는 지금껏 받아본 그 어떤 반지보다 더 예쁘고 아름다운 반지가 되었다.
나중에서야 이 반지가 700원짜리라는 걸 알게 됐지만, 그녀는 지금까지도 이 반지를 가장 소중한 보물로 간직하고 있다.
사진을 찍은 후에 아이의 사랑스러움이 나에게 스며들었다. 장난감들이 가득한 문구점에서 엄마를 위해 생일선물을 고르고 있었을 7살 꼬마 아이의 사랑스러움이 말이다.
누구보다 딸을 원했던 남자는 막내딸이 태어났을 때 고생한 아내를 위한 반지를 선물했다. 그 반지는 유난히도 색깔이 영롱했고, 막내딸은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났다.
반지는 어느덧 50년이란 세월을 품고 그 귀하디 귀한 막내딸의 손가락에 끼워져 있었다.
바늘구멍만 한 불빛으로 반지를 비추는 동안 작은 아기를 품에 안고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을 다정한 아비의 얼굴이 그려져 너무나도 평온했다.
사진이 좋아 사진을 알고 싶어 아무도 모르게 대학교 원서를 내고 기다리는 동안 두렵고 초조하면서도 내심 불합격 통지를 받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막상 학교에 들어가고 나니 기쁘면서도 내가 이걸 잘 마무리할 수 있을까에 대한 두려움으로 혼란스러웠다.
그런 나를 가장 잘 알고, 날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 이 반지를 건네주며 진심으로 응원해주고 보듬어주며 힘을 준 반지이다.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옥을 품에 지니고 장식하면 약효가 나타나고 잡귀를 물리칠 수 있다고 믿었다.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건강을 염려해 옥반지를 선물해 드렸고, 어느 날 시어머니는 고맙다며 다시 며느리의 손가락에 큼지막한 옥반지를 끼워주셨다.
메아리처럼 되돌아온 빠알간 옥반지를 찍는 내내 며느리를 향한 시어머니의 한없는 사랑이 느껴졌다.
그녀는 이 반지를 볼 때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서운함이 묻어난다고 했다.
첫아이를 낳은 후, 남편으로부터 이 반지를 선물 받았지만 그녀는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그녀가 원한 건 선물이 아니라 "고생했다. 수고했다."라는 따듯한 마음이 담긴 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둘째도 아들이다."였다.
반지를 비추는 내내 속으로 생각했다. 나라면 어땠을까.
행복하지 않은 반지도 있구나...
아버지는 어리바리한 아들이 행여나 애인을 놓칠까 염려스러웠다. 그리고는 14시간의 비행기를 마다않고 날아와 아들을 대신해 반지를 선물했다. 자신의 며느리가 되어달라고.
한국을 살고 있는 여자로서 이 반지는 부러움 그 자체였다.
그녀가 이 반지를 손가락에서 뺀 건 이번이 처음이란다. 그녀는 반지를 처음 받은 날부터 단 한순간도 빼지 않았다는 말을 하며 반지를 건네주었다. 나는 반지를 건네주는 그녀의 표정 속에서 20년도 더 된 그날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남들처럼 편안 일 하지 않고 몸을 쓰는 힘든 일을 하며 가정을 꾸려가는 자식을 바라보는 애틋한 마음, 부모로서, 엄마로서, 더 도와주고 싶지만 그러지 못함에 더 애틋해지는 마음.
그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 사준 반지, 얼마나 좋으면서 또 얼마나 아렸을까...
내가 이 반지에 새겨진 작은 흠집 하나하나를 비추는 내내 똑같은 생각이 계속 맴돌았다.
반지 하나가 품고 있는 사랑의 크기는 얼마만큼일까.
작은 반지 하나가 품을 수 있는 사랑의 크기는 얼마만큼일까.
그녀의 아빠는 반지를 새로 사서 끼시기만 하면 한 달을 못가서 잃어버리신다.
이반지가 몇 번째 반지인지도 알 수 없단다.
그래도 이번 거는 본인만의 스타일을 딱 맞춘 반지라며 무척 좋아하고 있으니 잃어버리지 마시길 바란다.
십자가가 새겨진 낡디낡은 반지 엄마는 당신의 종교처럼 그 반지를 30년 넘게 끼셨다.
엄마의 손을 잡고 있을 때면 엄마의 체온과 함께 그 반지의 촉감이 같이 느껴지곤 했다.
지난 해 여름 엄마가 그렇게도 아끼던 그 반지는 내 손에 끼워졌다.
반지는 정말이지 아무렇지도 않게 원래 내게 있었던 것처럼 그렇게 자연스러웠다.
그리고 반지에 스며있던 30년의 시간 역시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나에게 그대로 스며들었다.
그래서일까. 반지는 나를 지탱해주고 있다. 작은 실수와 어긋남들이 겹쳐 지치고 속상할 때면 약지 손가락의 반지는 나를 토닥거린다.
괜찮다. 괜찮다. 언제나 내 편이던 엄마의 부드러운 손길처럼 그렇게 나를 보듬어 준다.
그녀의 어머니는 자식들이 보내준 용돈을 모아 반지를 만드시는 취미가 있으셨다. 하지만 그 취미는 어떤 명목으로든 다시 자식들을 향하곤 했다.
그녀의 어머니가 편찮으신 몸으로 그녀의 집에 머무를 때, 수고한 딸과 사위를 위해 줄 게 없다며 당신의 손가락에 있던 반지를 빼주셨다.
병간호하는 자식들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으로 빼 주신 반지는 있는 그대로의 어머니인 것 같다. 모든 걸 주시는데 왜 부모님들은 줄 게 없다 할까?
내 친구 혜경엄마가 백화점 진열대에서 한참을 들여다본 후에 사진을 찍어 보여준 반지이다. 난 그녀가 그 반지를 사지 않고 구경만 한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우연히 지하상가에서 똑같은 반지를 발견하고 이 반지를 친구에게 선물했다. 반지를 받은 그녀는 아줌마스러운 표정으로 손가락에 낀 반지를 요리조리 보며 너무나 좋아했다.
나는 친구가 오랜만에 행복해하는 모습을 그냥 바라보고만 있었다.
불 꺼진 작은 암실에서 반지를 바라보는 내내 친구의 과장된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장인어른은 난치병을 앓고 계셨고 짧지 않은 투병생활을 해야만 했다. 그는 장인어른의 치료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진심을 다해 노력했고 장인어른이 돌아가신 후에 장모님은 이 반지를 사위에게 주셨다.
아마도 반지에 스며있는 시간과 사랑을 그대로 자식에게 전해주고 싶으셨던 모양이다.
난 불을 끈 채로 이 구부러진 반지를 한참 동안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이내 조금씩 그 형체가 드러나기 시작할 즈음 작은 불빛을 켜 백 번의 불빛을 주었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그래야만 반지의 잔흠집 하나하나에 담겨 있을 그분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반지는 그녀가 초등학교 선생님 시절에 행사용으로 즐겨 사용했던 반지이다. 젊어서부터 입학식이나 졸업식과 같은 학교의 큰 행사가 있는 날에 주로 낀 반지였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 점점 뚱뚱해지면서 더 이상 손가락에 낄 수 없는 지경까지 오게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남편에게 부탁해 반지의 고리를 자르고는 투명 테이프를 감아서 정년 퇴임을 하는 날까지 이 반지를 아껴서 사용했다.
어느 정도의 나이를 먹고 사회생활하면서 친구를 만든다는 것은 참 어렵고 힘든 일이다. 그녀의 새로운 친구들은 있는 그대로 친구로서 받아주었다. 그래서인지 그 친구들은 그녀에게 특별히 소중한 친구들이라고 한다.
반지를 바라보며, 있는 그대로를 받아주는 친구들이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부러웠다.
언니는 소꿉친구가 사준 반지를 어디에 두었는지 자꾸 잊어버린다고 투덜거렸다. 생각나서 찾으면 없고 신경 쓰지 않고 있으면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나는 웃긴 반지라고 했다.
이번에는 화장대 머리빗 통에 있었다며 머리카락이 붙어있는 반지를 그대로 건네주었다.
값비싼 반지도 아닌데 왜 이리 열심히 찾을까 궁금했다. 어둠 속에서 반지를 찍다 보니 어릴적 소꿉친구와 숨바꼭질하듯 반지와 같이 노는 듯 했다.
한복집에 들어가자마자 눈에 띄었다던 이 반지는 어떤 한복에도 잘 어울려 그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하는 마법 같은 반지라고 한다.
화려하지도 않게 다소곳한 자태는 많은 세월이 흘렀어도 그 가치가 여전한 것 같다.
6살짜리 딸을 두고 있는 그녀는 결혼을 앞둔 어느 날 엄마에게서 할머니의 할머니가 끼셨던 이 반지를 물려받았다고 했다.
손수건에 쌓인 채로 이야기로만 존재하던 반지를 물려받은 그녀는 자기가 들은 것처럼 자신의 딸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들은 아이는 얼른 엄마만큼 커서 반지를 받고 싶어하고 있다.
백년의 시간을 품고 있는 반지를 찍는다는 것은 정말이지 진정시킬 수 없는 흥분이었다. 그 시간만큼은 아닐지라도 이 사진 역시 긴 시간을 품어주길 바란다.
언제부터 지니고 다녔는지 가물가물하지만 화이트데이라는 것은 선명하다. 표현이 많이 서툴던 남편은 어느 해인가 무심한 척, 툭! 반지를 던져주었다.
무슨 일 있었냐는 듯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랑을 전해주던 무뚝뚝함에 웃음을 지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아이들을 키우고 일을 하다 어느 순간 사라진 결혼반지를 대신해 항상 목걸이에 걸고 다닌다.
5명의 고등학교 단짝들 중에 처음으로 아기가 생겼다. 꼬물꼬물한 게 어느덧 첫돌이 되었고, 친구들은 반지를 고르는 동안 너무 들떠서 친구의 아이만이 아닌 우리들 모두의 아이였다.
돌 반지가 아이 손가락에 끼워졌을 때 신기해하며 쳐다보는 아이의 눈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아이는 커가면서 반지의 의미와 더불어 사랑으로 지켜주는 많은 이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조카와 조카사위가 연애 중에 헤어질 위기가 있었다. 그때 내가 둘에게 선물한 반지이다. 이 반지를 계기로 사랑을 재차 확인하며 위기를 극복했다고 했다.
조카 내외는 이 커플링 덕분에 둘의 애틋한 사랑을 되새길 수 있었다며 그리고 결혼까지 이어준 고마운 반지라며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남편으로부터 프러포즈와 함께 선물 받았던 커플링 반지이다. 결혼 후 어느 날인가 남편은 반지를 잃어버린 채 풀이 죽은 모습이 되었고, 부부는 똑같은 반지를 사기 위해 온 동네를 다 돌아다녔지만 결국 한 짝만 남게 되었단다.
부부는 아쉬운 마음에 새로운 커플링을 사지만 매번 둘 중 하나는 다시 사라지고 만다. 지금 그녀의 서랍 속에는 한 짝만 남은 커플링 반지가 서너 개는 굴러다니고 있다.